커피 원두 산지에 따른 산미 비교

카페에서 그냥 커피를 시켜먹을 때는 그냥 주는 대로 마시는 사람도 집에서 커피를 내려먹기 시작하면 커피 원두에 대해 관심이 생길 것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보통 본사에서 표방하는 맛을 구현하기 위해서 원두를 이것저것 섞어서 파는데 가정에선 그렇게 원두를 이것저것 섞어 테스트 해보면서 최상의 커피 맛을 연구할 수는 없으므로 자기 입맛에 맞는 산지의 원두를 골라 먹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물론 스타벅스, 일리 등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에서 파는 원두 홀빈을 그대로 구입할 수도 있지만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비싸거나 제조일자가 오래 됐거나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맛있게 블렌드된 커피 원두라도 제조일자가 오래 되면 맛이 없다.

특히 입맛이 까다롭지 않고 커피맛을 잘 모르지만 약간의 산미 차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소비자는 ‘정확한’ 맛보다 ‘적당한’ 맛만 찾으면 된다.

커피의 맛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향미, 맛, 산미, 바디 혹은 질감, 후미 등이 있다.

이 포스트에서는 다양한 커피의 맛 중에서 산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커피 원산지별 산미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산미란?

산미는 말 그대로 산(acid)의 맛이며 영어로 acidity 정도로 번역된다.

산이란 물에 녹았을 때 pH가 7보다 낮은 물질인 acid로, ‘시큼하다’는 뜻의 라틴어 acidus를 어원으로 한다.

우리 주변에는 탄산음료의 탄산, 식초의 아세트산, 과일의 시트르산 등이 있다.

커피 속에도 다양한 유기산이 존재하는데 로스팅 과정 중에 소량 생성되는 것을 포함하면 셀 수 없이 그 종류가 많다.

이 중 구연산(시트르산), 말산(사과산), 인산이 맛에 중요하다고 하며, 구연산, 아세트산이 많으면 과일과 같은 산미가 강해진다.

각각의 산이 만들어내는 산미에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산미는 커피에 포함된 유기산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강할 것이다.

하지만 산미라는 것을 향, 향미, 후미, 신맛의 복합적인 맛으로 정의하기도 하기 때문에 꼭 유기산의 함량이 산미의 정도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따라서 아래의 산미 비교는 우선 유기산의 함량을 기본으로 하되, 사람의 산미 평가도 비교한다.

원산지에 따른 산미 비교

원산지별로 커피 속의 모든 유기산을 비교한 연구결과는 찾을 수 없었고 몇 개의 논문 데이터를 살펴보고 결과를 종합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1) 첫번째 자료는 에티오피아, 케냐,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브라질, 과테말라산 원두에서 카페인과 페놀산(갈산, 클로로겐산, 쿠마르산, 카페인산) 함량을 분석한 결과다.

산지별 커피 원두 카페인과 페놀산 함량 분석(김민진, 2018)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코스타리카 원두가 대체로 유기산의 함량이 높은 편이었다.

2) 두번째 자료는 13가지 원두의 pH, 총산도, 당도, 염도를 분석한 결과이다.

산지별 커피 pH, 총산도, 당도, 염도 분석(권훈태, 2017)

pH만 비교했을 때 산도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파나마 게이샤, 케냐, 탄자니아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3) 세번째 자료는 한국산 원두와 에티오피아, 엘살바도르, 브라질, 중국, 베트남 원두의 유기산 함량을 비교한 결과다.

산지별 커피 원두의 유기산 함량 비교

클로로겐산의 산물인 퀸산, 그리고 말산, 아세트산, 젖산, 포름산 함량이 나타나 있다. 엘살바도르, 브라질 커피가 대체적으로 유기산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4) 그렇다면 사람의 입맛으로는 어떻게 느껴질까?

커피 원두 산지에 따른 관능평가 비교. 김민진(2022)

산미(acidity)만을 평가할 때 6가지 원두 중 에티오피아, 케냐, 코스타리카 순으로 산미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

처음에는 ‘산미가 높다 = 산도(acidity)가 강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pH, 유기산 함량을 비교하여 산미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국내논문 한두개만 가지고 포스팅을 쉽게 마무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료를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혼란에 빠졌다.

원산지별 유기산의 함량도 예상과 다르고, 커피맛에 영향을 준다는 특정 유기산들이 다른 유기산에 비해 함량이 너무 낮아서 그 주장에도 의심이 갔기 때문이다.

흔히 에티오피아나 케냐 커피가 과일같이 시큼한 산미가 강하다고들 한다. 이들 커피에 유기산 함량, 구연산 함량이 많기 때문에 산미가 강하다고 말하는 글도 발견했다. 그런데 실험결과를 보면 이들 커피는 오히려 pH가 높은 편(산도가 낮은 편)이며 유기산 함량도 특별히 높지 않고 평균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서 내가 자료를 잘못 찾은 건가 싶어 논문을 대여섯 편을 더 찾아봤는데 다른 논문도 특별히 실험결과가 다르지 않았다. 산미에 특별히 영향을 주는 유기산이 따로 있는 건가 싶어서 구연산, 아세트산, 클로로겐산 등의 함량도 따로 살펴보았지만 이것들도 에티오피아, 케냐 커피에서 특별히 함량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의 맛 평가에서는 분명하게 에티오피아산 커피 또는 케냐 커피가 가장 산미가 강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최신 국외논문 ‘Acids in brewed coffees: Chemical composition and sensory threshold(Christina J.Birke Rune, 2023)’에서

일반적인 믿음과 다르게 브라질산 커피가 케냐산 커피보다 산 농도가 높다

라는 의미의 문장을 찾고 나서야 내가 자료를 잘못 찾거나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논문 검색을 멈출 수 있었다.

위 국외논문에서 브라질산 커피의 구연산(citric acid)과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함량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는 위에서 인용한 국내논문 연구결과와 같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유기산은 원산지별로 유의한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다만 위에서 pH값을 나타낸 국내논문 자료는 브라질산의 pH가 가장 높게 나와 국외논문과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

결론을 내리자면, 커피에서 말하는 산미라는 것은 화학적으로 정의하는 산도(acidity), 신맛과는 차이가 있으며 ‘상큼한 과일향’에 가까운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평가에서 에티오피아산 커피는 산미(acidity)와 함께 풍미(flavor)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에티오피아산 원두는 다른 성분에서는 유의하게 높은 값을 나타내지 않는데 로스팅한 에티오피아산 원두가 어떤 한가지 성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그건 바로 지방 함량이다.

이 지방들은 단백질과 만나 향을 만들고, 향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커피 로스팅 과정에서 생기는 마이야르(Maillard) 반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산미가 높은 커피를 찾는다고 해서 화학적인 데이터를 뒤져봤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진짜로 신맛 그거 하나를 원하는 것이라면 브라질산 원두가 답이긴 하다.

그게 아니라 어떤 복합적인 시큼한 과일향, 풍미를 찾는다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에티오피아산 또는 케냐 원두를 사면 된다.

더불어, 로스팅을 과하게 하거나 제조일자가 오래 되면 원산지가 어디든 간에 향은 다 날아가 버리고 쓴맛만 남게 되므로 원산지와 함께 로스팅 정도, 제조일자도 산미가 강한 커피를 찾기 위해 확인해야 할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