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은 지나가다 보이는 길고양이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실 겁니다. 하지만 임신을 하셨다면 절대로 그러지 마셔야겠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임신 중인 임산부가 절대로 고양이, 그 중에서도 길고양이를 만지거나 근처에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양이는 톡소플라즈마 알을 배설하는 유일한 동물
고양이가 임산부에게 위험한 이유는 고양이를 통해 번식하는 톡소플라즈마라는 기생충 때문입니다. 톡소플라즈마는 태아의 유산, 사산, 기형, 사망에 관여하는 매우 위험한 기생충입니다.
톡소플라즈마는 오직 고양이과 동물의 몸 속에서만 알을 낳고 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일반적으로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동물 중에서 톡소플라즈마의 알을 배출하는 동물은 고양이뿐입니다. 톡소플라즈마는 사람을 포함한 다른 동물의 몸 속에서 오래 잠복하거나 생존할 수 있지만 주요 감염 경로가 되지는 않습니다.
톡소플라즈마란?
톡소플라즈마(Toxoplasma gondii)는 30-50 μm 크기의 작은 기생충으로, 사람을 포함한 거의 모든 온혈동물에 감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 기생충입니다. 특히 고양이는 이 기생충의 종숙주(기생생물 이 유성생식을 하는 숙주)로서, 알 형태인 오오시스트(Oocyst)로 톡소플라즈마를 배출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고양이는 이 기생충에 감염되면 대변을 통해 수십만에서 수억개의 오오시스트를 배출합니다. 오오시스트는 1~5일 내로 성숙하여 감염력을 지닌 2개의 포자낭을 생성합니다. 고양이가 흙과 모래에 배설을 하면 여기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중간숙주와 농작물에 오오시스트가 침투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인간이 잘 씻지 않거나 날것으로 섭취하면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숙주의 장으로 침투한 오오시스트는 파괴되어 내부의 포자낭이 열립니다. 각 포자낭 안에는 4개의 스포로조이트(Sporozoite)가 들어있고, 이것들이 숙주의 장 세포 속에 침투합니다. 스포로조이트는 빠르게 증식하는 타키조이트(Tachyzoite)가 되어 전신을 감염시키다가 숙주의 면역반응으로 더이상 증식이 어려워지면 느리게 분열하는 브래디조이트(Bradyzoite) 상태가 되어 오랜 기간 잠복합니다. 그러다 숙주의 질병, 노화, 면역억제제 복용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 다시 타키조이트가 되어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톡소플라즈마의 생존력
고양이의 배설을 통해 배출된 성숙한 오오시스트는 외부 환경에서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생존할 수 있습니다. 알코올, 염소와 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독약에도 강합니다. 물리적으로 깨끗하게 손을 씻지 않으면 염소가 들어있는 수돗물이나 알코올 손 소독제에 노출되어도 톡소플라즈마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인간을 포함한 중간숙주의 몸 속에서는 훨씬 오래 생존합니다. 브래디조이트 상태의 톡소플라즈마는 면역 체계에 맞서 낭포(조직 낭종)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오랜 시간 잠복합니다. 뇌, 안구, 근육처럼 면역이 약한 곳에 주로 잠복하여 숙주의 면역 체계뿐만 아니라 어떤 치료제로도 이를 제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잠복 기간은 짧게는 2주, 길게는 수년에 이르며 일부는 숙주가 사망할 때까지 수십년간 잠복합니다.
이렇게 생존력이 강하다보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감염됩니다. 어떤 연구는 이미 전세계 사람들의 3분의 1이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되었다고 보고합니다.
톡소플라즈마가 태아에게 끼치는 영향
일반적으로 톡소플라즈마는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에게는 특별히 증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가벼운 발열, 두통, 근육통이 나타났다가 금방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톡소플라즈마가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임산부를 포함한 노약자처럼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선천성 톡소플라즈마증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적이 없던 임산부가 처음으로 이 기생충에 감염될 경우,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임신 중에 어머니가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되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기생충이 전염될 수 있는데, 전염 시기에 따라 유산이나 사산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때문에 톡소플라즈마 감염률이 특히 높은 프랑스 같은 경우는 모든 임산부가 산전 진찰 시 톡소플라즈마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감염력이 있는 경우 별다른 추적 검사를 하지 않지만 감염력이 없는 경우 매달 혈액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모니터링합니다.
유산, 사산, 기형, 사망
2013년 Clinical Infectious Diseases에 실린 연구는 임신 시기에 따른 태아의 톡소플라즈마 감염 확률과 증상 심각도를 조사했습니다.
| 임신 시기 | 태아 감염 확률 | 증상 심각도 |
|---|---|---|
| 1기 (0~12주) | 낮음 (~10%) | 매우 심각 (기형, 사산 등) |
| 2기 (13~26주) | 중간 (~30%) | 중등도 이상 |
| 3기 (27주~출산) | 높음 (~70%) | 대부분 무증상 or 경증 |
임신 초기에 태아 감염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증상은 매우 심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임신 초기에 태아가 감염될 경우 산 또는 사산에 이를 수 있으며, 톡소플라즈마가 태아의 중추신경계나 눈에 침투하여 수두증, 뇌석회화, 실명과 같은 질병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습니다.
출생 시 증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신경계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톡소플라즈마는 수년 후에 갑자기 시력장애, 청력장애 등 발달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유년기 자폐
톡소플라즈마가 일으킬 수 있는 유년기 발달 문제에는 자폐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년 Tooran Nayeri의 메타분석 연구는 10건의 연구를 검토하여 자폐증 환자와 톡소플라즈마 감염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을 관찰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2021년 Jamila S Al Malki의 연구는 어머니 36명, 자폐 아동 36명, 비자폐 아동 36명의 혈액을 채취하여 모체 톡소플라즈마증과 소아 자폐증의 위험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자폐 아동에서 DNA 및 미토콘드리아DNA의 손상을 확인했으며, 톡소플라즈마가 이러한 DNA 손상과 관련된 소아 자폐증의 발병에 기여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임산부가 톡소플라즈마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
위와 같은 위험을 고려할 때 임산부는 반드시 톡소플라즈마를 경계하고 멀리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임산부는 톡소플라즈마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야생 고양이, 길 고양이 근처에 가지 않기
- 바깥에서 산책하는 집 고양이 피하기
- 육류, 채소 전부 가열 조리하여 먹기
- 야외 활동 후 손 씻기, 옷 세탁하기
야생 고양이, 길 고양이 근처에 가지 않기
야생 고양이 또는 길 고양이는 톡소플라즈마 감염에 특히 취약합니다. 오염된 흙과 모래와 물, 쥐와 같은 중간 숙주를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많은 야생 고양이가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경험이 있습니다. 이 고양이의 근처에는 톡소플라즈마의 알(오오시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멀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깥에서 산책하는 집 고양이 피하기
집고양이는 야생 고양이 또는 길 고양이에 비해 톡소플라즈마 감염 위험이 훨씬 적습니다. 그러나 집고양이가 야생에서 생활한 적이 있거나 가끔씩 야외에서 산책을 한다면 톡소플라즈마 감염에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관련 연구는 다른 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집고양이가 외출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외출 경험이 많은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려우므로 임신 기간 동안만이라도 집고양이를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육류, 채소 가열 조리하여 먹기
앞서 오오시스트 형태의 톡소플라즈마는 웬만한 소독제로도 제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채소를 씻을 때는 주방 세제를 사용하는 것보다 흐르는 물에 꼼꼼히 씻는 물리적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소는 형태가 복잡하고 쉽게 손상되기 때문에 모든 면을 구석구석 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열 조리하는 것입니다. 70도 정도의 온도면 톡소플라즈마는 죽습니다. 육류의 근육 속에 있는 브래디조이트도 이 방법으로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육회 같은 날것은 먹으면 안 됩니다.
야외 활동 후 손 씻기
야외 활동을 하면 오오시스트에 오염된 모래나 흙이 옷이나 손에 묻을 수 있으므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본적으로 옷을 세탁하고 손을 씻어야 합니다. 오오시스트는 일반적인 세제, 소독제에 강하므로 손을 씻을 때는 물리적으로 뽀득뽀득 씻는 것이 중요하고, 세탁기를 작동시킬 땐 60도 이상의 고온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톡소플라즈마 감염이 흔하다곤 하지만 그 위험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태아에겐 말그대로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임산부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톡소플라즈마를 피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으므로 위에서 제시된 예방법을 잘 실천하여 태아를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글에서 다하지 못했던 톡소플라즈마가 성인에게 끼치는 심각한 위험(조현병, 실명)과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톡소플라즈마 감염실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