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는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서 온천이나 목욕탕에서 시원하거나 따뜻한 탕에 몸을 푹 담그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초기 또는 만삭 임산부는 온천이나 목욕탕 이용 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주의점이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주의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임산부가 온수 욕조를 사용할 때의 위험성
태아는 양수에 의해 보호되고, 40도 이상의 온탕 온수라도 엄마의 심부 체온을 갑작스럽게 상승시키지는 않습니다. 혹자는 온수 목욕이 임산부와 태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없다며 안심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체온보다 약간 높은 온도라도 주의해야 할 근거가 몇 가지 연구 결과에서 나타납니다.
임산부의 욕조 사용과 태아의 선천적 기형에 관한 연구 결과
2003년 미국 역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에 발표된 한 연구는 임신 중의 온수 욕조(hot tub) 사용이 유산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밝혔습니다.
1996~1998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인구 기반 전향적 코호트 연구를 수행하여 1063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결과, 임신 초기에 온수 욕조나 월풀 욕조를 사용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유산 위험이 2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위험은 온수 욕조를 많이 사용할수록, 임신 초기일수록 증가했습니다.
2011년 학술지 ‘선천적 결손 연구(Birth Defects Research)는 임산부가 다중 이용 온천이나 월풀을 두 번 이상 사용하거나 그 안에 30분 이상 머무르면 태아의 무뇌증, 위파열증, 척추 이분증과 같은 선천적 기형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2013년 환경보건 저널(Environmental Health)은 산모의 욕조 사용 습관과 자손의 선천적 기형 위험에 대한 사례 대조군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샤워 빈도, 욕조 사용 시간, 욕조 사용 빈도는 자손의 선천적 기형 위험 사이에 연관성이 거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샤워 시간을 비교했을 때는 15분 미만 샤워를 한 여성에 비해 15분 이상 샤워를 한 여성의 자손은 위분열증, 구순구개열, 사지 축소 결손의 위험이 약간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연구에서 욕조 사용 시간은 선천적 기형 위험과 연관성이 없었지만 위분열증의 위험 증가와는 관계가 있었습니다. 선천적 기형에 대해서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여성 대부분(대조군의 54%)이 욕조를 사용하지 않아 직접적인 비교가 어려워서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 연구들은 설문 조사에 의한 연구 결과입니다.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직접적으로 산모의 온수 욕조 사용과 태아의 위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만, 여러 동물 실험에서는 어미의 장시간 온수 노출이 자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결과가 이미 밝혀졌습니다.
임산부가 장시간 욕조를 사용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
- 임산부의 체온 조절 능력 저하
- 태아 신경관 결손 위험
- 태반 혈류 감소
임산부의 체온 조절 능력 저하
임산부는 복부와 가슴의 면적이 늘어나 신체 표면의 면적이 증가하고 피부가 얇아져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집니다. 호르몬의 변화로 기초 체온도 36.5℃~37℃ 정도로 살짝 높아지기 때문에 평소보다 추위를 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임신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따뜻한 물로 샤워 또는 온수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런 조건에서 임산부가 온수 욕조를 하게 되면 높은 온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욕조 속 온수의 열은 얇아진 복부 피부를 통해서 쉽게 양수로 전달되는데, 아무리 임산부가 건강하다고 해도 약 0.9kg이나 나가는 양수 전체의 온도를 순식간에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태아 신경관 결손 위험
임신 초기는 태아가 중요한 장기를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이때 태아가 고열에 노출되면 신경관 결손 등 기형 위험성이 크게는 6배까지 증가한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2005년 역학 저널에 실린 연구는 동물 연구에서 어미가 높은 심부 체온에 노출되면 다양한 동물 종에서 기형이 유발될 수 있으며 특히 뇌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이며,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으로 인한 고열뿐만 아니라 높은 외부 온도도 태아의 기형 위험을 증가시켰습니다.
2020년 메타 분석 연구는 태아의 고열 노출이 조산, 저체중아, 사산, 유산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위험은 온도가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태반 혈류 감소
임산부의 심부 체온이 올라가면 피부 혈관이 확장되고 피부쪽 혈류량이 증가합니다. 그로 인해 따뜻한 피는 신체 표면에서 열을 빼앗기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체온을 낮추느라 태반으로 가야 할 혈류까지 피부로 보내진다는 것입니다. 태반 혈류량이 감소하면 태아는 영양분과 산소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임산부의 혈액은 혈류량에 비해 적혈구가 모자란 편입니다. 임산부 스스로도 빈혈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에 있으며, 태아 역시도 같은 조건에 있습니다.
2020년 중국의 연구팀은 중국 광저우의 임신 초기 4천여명의 여성을 추적 관찰했습니다.
이 연구는 임신 중 산모가 고온에 노출되면 태반의 부피 및 무게가 작아질 뿐만 아니라, 태반 무게에 비하여 태어난 아기의 체중도 더 작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는 산모의 고온 노출로 인해 태반으로 가는 영양분, 즉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임산부의 올바른 목욕 방법
- 10분 이상 씻지 않는다
- 미지근한 물로 씻는다
- 입욕제나 세정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 엽산 영양제를 섭취한다
10분 이상 씻지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욕조 사용이 아닌 샤워만으로도 태아는 고열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샤워, 욕조 사용, 사우나 또는 온천 이용 모두 포함하여 10분 이상 높은 온도에 노출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물론 10분보다 더 짧으면 더 안심이 될 것입니다.
미지근한 물로 씻는다.
임산부의 심부 체온이 1℃만 더 높아져도 장시간 그 온도가 유지되면 태아는 위험해집니다. 그러니까 임산부로서는 고작 약간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지는 온탕에 들어가는 것도 안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냉탕 역시 체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려 혈관을 수축시키므로 태반으로 가는 혈류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초기 임산부가 10분 이상 목욕을 한다면 미지근한 물로 씻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입욕제나 세정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입욕제나 세정제는 산모의 질 산도를 떨어뜨려 태아가 감염에 취약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임산부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해당하는 문제기 때문에 산모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엽산 영양제를 섭취한다
엽산 영양제는 태아의 신경관 결손과 척추 이분증 등의 기형을 예방하는 데에 효과적입니다.
다만 엽산만으로는 산모의 고온 노출로 인한 태아의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엽산 영양제를 섭취한다고 해서 마음껏 욕조를 사용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까지 임산부가 온수 욕조를 사용할 때의 주의점을 알아보았습니다. 몸 한번 씻는 데 뭐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고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은지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태아의 건강은 산모의 건강과 연결됩니다. 원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니만큼, 두 사람의 건강을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합시다.
(아래 포스트에서 육아와 관련된 다른 주의사항에 대해서도 살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