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임산부의 톡소플라즈마증이 태아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톡소플라즈마는 임산부가 아닌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위험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톡소플라즈마가 보통의 성인에게 끼치는 위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톡소플라즈마의 생애 주기와 관련된 용어를 모른다면 먼저 아래 글을 읽어주세요.
톡소플라즈마가 성인에게 끼치는 영향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에게 톡소플라즈마는 별다른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아서 무증상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무증상 감염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톡소플라즈마는 몸속에 잠복하면서 활동을 멈춘 상태로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거나 다른 질병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지면, 잠복해있던 브래디조이트는 타키조이트가 되어 급성 감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톡소플라즈마 급성 감염은 독감과 비슷한 증상, 예를 들어 발열, 인후통, 두통, 근육통, 피로 등이 나타납니다.
사실 급성 감염은 감기처럼 짧은 시간 안에 지나가는 경우가 많이 그리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브래디조이트 형태로 중추신경계와 안구에 오랜 기간 잠복하는 톡소플라즈마입니다.
브래디조이트는 면역 반응이 약한 뇌나 안구에 주로 잠복합니다. 뇌나 안구는 과도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면 심각한 손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면역 물질이나 면역 세포가 제한적으로 전달됩니다. 이를 이용하여 톡소플라즈마는 주로 뇌와 안구에 머무르다가 숙주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정신적 이상이나 시력 손상을 일으킵니다.
행동 변화
설치류의 행동 변화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쥐가 고양이를 무서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쥐가 겁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2007년의 한 연구는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설치류는 다른 포식자의 냄새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고양이의 냄새만은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염된 설치류는 고양이에게 오히려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2011년의 연구는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쥐가 평소에는 피하던 고양이 냄새를 더 오래 탐색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감염된 쥐의 생식에 연관된 신경 활동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위 연구결과들은 톡소플라즈마가 숙주의 대뇌 변연계를 꽤 선택적으로 조작하여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행동 변화
톡소플라즈마가 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면 인간의 행동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1953년 Burkinshaw의 연구 이후, 톡소플라즈마가 개인의 인지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정신 장애, 폭력, 위험 감수, 성격 변화 및 인지 장애와 관련이 있다는 것에 대한 점점 더 많은 증거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연도, 저자 | 표본 수 | 관련된 정신질환 유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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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utterland 외 | 12,009 사례 vs 71,441 대조군 | 조현병 (OR=1.81, p<0.00001), 양극성 장애 (OR=1.52, p=0.02), 강박장애 (OR=3.4, p<0.001), 중독 (OR=1.91, p<0.00001) |
2021, Akgül 외 | 조현병 117명, 대조군 120명 | 극단 선택 시도 (p<0.05) |
2019, Burgdorf 외 | 헌혈자 81,912명, 대조군 11,546명 | 조현병 (OR=1.47; 95% CI=1.03–2.09), 교통사고 (OR=1.11; 95% CI=1.00–1.23) |
2015, Monroe 외 | 환자 2,353명, 대조군 1,707명 | 만성 정신병 (OR=2.54; 95% CI=1.63–3.96, p<0.01) |
2000, Flegr 외 | 톡소 감염자 230명 | 성격 변화 |
2018, Gohardehi 외 | 1,841건 연구 | 교통사고 위험 증가 (p<0.05) |
2019, Sutterland 외 | 교통사고 4,229건, 극단 선택 시도 9,400건 | 교통사고 위험 증가 (OR=1.69), 극단 선택 시도 (OR=1.39) |
2015, Ngoungou 외 | 간질환자 1,280명, 대조군 1,608명 | 간질 (OR=2.25; 95% CI=1.27–3.9) |
2019, Sadeghi 외 | 간질환자 3,771명, 대조군 4,026명 | 난치성 간질 (OR=2.65), 활동성 간질 (OR=1.37) |
2019, Bayani 외 | 알츠하이머 환자 301명, 대조군 313명 | 알츠하이머병 (OR=1.38) |
2021, de Haan L 외 | 건강한 참가자 13,289명 | 처리 속도 저하 (SMD=0.12), 작업 기억 저하 (SMD=0.16), 단기 기억 저하 (SMD=0.18), 집행 기능 저하 (SMD=0.15) |
2020, Kamal 외 | 환자 348명, 대조군 400명 | 우울증 (OR=2.9), 극단 선택 시도 (OR=6.2) |
2021, Al Malki 외 | 자폐아동 어머니 36명, 대조군 어머니 36명 | 유년기 자폐 |
2019, Flegr 외 | 참가자 6,367명 | 자폐 (OR=4.78), 조현병 (OR=3.33), ADHD (OR=2.50), 강박장애 (OR=1.86), 반사회적 성격장애 (OR=1.63), 학습장애 (OR=1.59), 불안장애 (OR=1.48) |
2020, Soleymani 외 | 15개 연구 포함 | 극단 선택 (OR=1.43; 95% CI=1.15–1.78) |
2020, Nayeri 외 | 편두통 환자 1,205명, 대조군 1,312명 | 두통 (OR=1.59; 95% CI=1.03–2.47) |
2018, Johnson 외 | 1,495명(대학생 및 사업 전문가) | 기업가 정신 및 충동성 |
위 표에서 보듯 최신의 수많은 연구가 일관되게 톡소플라즈마가 성격 변화나 정신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감염된 설치류와 마찬가지로 감염된 인간도 위험을 감수하고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톡소플라즈마가 쥐나 인간이나 비슷한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면, 고양이를 무서워 하던 사람이 갑자기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는 현상도 톡소플라즈마 감염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현병

2024년 중국의 Yiting Zhu의 연구는 최신의 연구들을 검토하여 톡소플라즈마와 조현병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해당 연구는 톡소플라즈마가 뇌 장벽을 통과하여 도파민 수치 증가, 신경 염증 생성, 글루타메이트(항산화 물질) 흡수 방해, 신경 세포 연결 차단, 신생 혈관 감소에 기여함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통해 톡소플라즈마는 중추신경계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며 기억 감퇴, 행동 장애, 조현병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위 연구는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강력한 증거들을 통해 톡소플라즈마가 조현병 환자에게 다양한 인지 영역 손상, 다양한 정신 병리학적 손상을 입히며 조현병의 발병과 악화에 기여함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워서 톡소플라즈마 노출이 많아지면 조현병이 발병할 확률이 두드러지게 커집니다.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Ramzi M Hakami의 연구는 조현병이 있는 환자 78명, 우울증 및 불안 장애가 있는 환자 78명,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 78명을 대상으로 13세 이전에 고양이를 키웠는지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에 비해 조현병 환자와 우울증 및 불안장애 환자는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웠을 확률이 각각 3.44배, 2.52배 높았습니다.
톡소플라즈마와 조현병 발병이 무관하다는 연구도 소수에 불과하지만 존재하긴 합니다. 그러한 연구들은 동물 보호단체(야생 고양이가 무해하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야생 고양이를 선별하여 제공하는 등 신뢰성이 떨어지는 방법으로 진행된 연구가 대부분이라 따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극단 선택 충동, 교통 사고와 같은 위험 감수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나라 덴마크에서 2012년 45,788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여성에겐 자해나 극단 선택과 같은 위험이 증가했으며 톡소플라즈마 항체가 많을수록 그 위험이 증가한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2018년 한국에서 실시된 연구는 155명의 극단 선택 시도자와 135명의 건강한 사람들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극단 선택 시도자들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톡소플라즈마 항체가 더 많이 발견됨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톡소플라즈마 항체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극단 선택 시도자들에 비해 더 심각한 극단 선택 시도, 우울증 증상, 불안을 나타냈습니다.

2018년 Shaban Gohardehi 등의 메타분석 연구는 9개의 연구를 분석함으로써 톡소플라즈마와 교통사고 간의 연관성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9개의 연구 중 5개에서 감염과 교통사고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했으며, 톡소플라즈마가 교통 사고가 발생할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외에 2009년 이스탄불 B. Kocazeybek의 연구는 31세에서 44세 사이의 남성에서, 2022년 이란 Hamidreza Ghasemirad의 연구는 35세에서 69세 사이의 사람들에서 톡소플라즈마 감염과 교통사고 간의 연관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교통 사고나 극단 선택 충동이 증가하는 것은 공포심이 감소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는 뇌 조직에 침투한 브래디조이트 형태의 톡소플라즈마가 대뇌 변연계의 편도체에 영향을 주는 것을 시사합니다.
감염된 사람들은 오히려 공포심을 즐기고 가학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는 감염된 쥐가 고양이 냄새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시력 저하

2023년 싱가포르의 Carlos Cifuentes-González 등의 체계적 검토와 메타분석 연구는 39개의 연구를 분석했습니다. 연구는 톡소플라즈마 감염으로 인해 안구 톡소플라즈마증(ocular toxoplasmaosis, OT)를 가진 환자의 약 35%에서 시력 저하가 나타났으며, 실명은 약 20%에서 발생함을 발견했습니다.

2024년 태국의 후향적 연구는 안구 톡소플라즈마증 환자 21%에서 항기생충 치료 후에도 심각한 시력 손실이 발생함을 확인했으며, 면역이 저하된 사람은 더 큰 병변과 시력 회복이 어려운 경과를 보였음을 관찰했습니다.
톡소플라즈마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
건강한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톡소플라즈마는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곤 하지만, 톡소플라즈마가 조현병, 시력 저하와 같은 질병과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맞습니다.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나 질병을 유발하는 기전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상관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되기만 하면 심각한 조현병이나 시력 상실이 유발되는 것은 아닙니다.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적이 있다고 해서 자포자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앞에서 보았듯 많은 연구들은 톡소플라즈마 항체의 양과 질병의 발병과 심각한 정도가 관련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즉 톡소플라즈마에 노출된 적이 있든 없든 앞으로라도 톡소플라즈마를 피하기만 하면 심각한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래는 톡소플라즈마 감염을 예방하는 네 가지 방법입니다.
- 길 고양이와 길 고양이 서식지와 분변 피하기
- 야외에서 활동하는 집고양이의 분변 피하기
- 야외 활동 후 손 씻기
- 음식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충분히 익혀 먹기
이 네 가지만 실천해도 감염 위험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귀여운 고양이들을 피하라고 하니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은 반감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모든 고양이가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된 것은 아니며 특히 집고양이는 대부분 안전합니다만, 고양이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따라 감염률이 꽤 높아질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전세계 및 한국에 사는 고양이와 사람들의 톡소플라즈마 감염 실태에 대해 알아보고,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감염률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따라서 얼마나 주의를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